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Book 2013. 6. 15. 08:10




 그 사이 몇 권의 책을 더 읽긴 했지만 쓰고 싶은 것만 쓴다. 내 마음이니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적어도 내게는 수필가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물론 그 이름을 들어본 건 문예부 지도 교사의 추천으로 구입한 '상실의 시대'였지만 몇 장 넘겨보고 읽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에 그의 수필집을 읽어보고 그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는 첫 작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역시 읽다가 말았다. 그의 소설이 마음에 안든다기 보다는 그냥 그의 수필이 더 좋다.


 재편집되어 재출간된 수필집과 이번에 나온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를 다 읽게 됐다. '그의 글을 다 읽고 말겠어' 라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 

 그의 글을 쉼을 준다. 조금 부담스러운 내용의 책을 읽을 때면 머리를 식힐겸 휴식이 필요하다. 그럴때마다 하루키의 책을 집어 든다. 짤막한 그의 글은 막간을 이용해서 읽기에도 최고의 선택이다. 비록 하루키는 막간용 도서로 동화를 추천하지만 말이다.


 하루키의 수필은 너무 진지하지 않아서 좋다. 또 억지로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지 않아서 좋다. 일부는 그러한 스타일에 '남는게 없다'고 말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렇다고 얻는게 없느냐? 그런것도 아니다. 인생은 해석이고 사람마다 사연이 다르다. 타인의 엉뚱하다 싶은 생각속에서도 타이밍에 따라 깨닫는 바가 있다. 때론 그 기발한 생각으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는 기회가 된다. 뭐, 과도한 해석이라고도 생각되지만 어쨌든 재미있다. 가끔씩 눈에 쑥 들어오는 참신한 표현을 보는 것도 좋다.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의 제목도 신선하다. 보통은 그의 글 중에 담겨있는 표현을 골라 제목으로 삼는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보고 대체 어떤 글에서 가져왔을지 궁금했다. 

 나도 저녁 무렵에 면도할 일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Je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