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필름에 빠져있어던 때다.
필름뿐 아니라 라이카에도 빠져있었던...
M7 ㅣ summicron 50mm
(maybe)
커피가 삶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이렇게 가까워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커피를 마시게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등학교때도 시험 기간이면 커피를 마시는 친구들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꽤 많았다. 카페인의 힘을 빌어 밤을 새고 시험 공부를 한다는 명목하에 커피에 손을 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당시만 해도 원두 커피는 그리 흔하지 않았고 거의 믹스 커피를 마셨을테고. 나는 무슨 고집이었는지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달달한 믹스 커피를 가볍게 음료처럼 마시는 친구도 있었는데 이유모를 나 자신과의 약속때문에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 때다. 아마 군대를 다녀와서 인듯 싶다. 미군들과 함께 생활했던 군대서는 가끔 아주 연한 아메리카노를 커피 메이커로 얻어 마셨다. 그들이야 커피없이는 거의 살지 못하니까. 지금 기억엔 엄청 큰 텀블러에 시도때도 없이 마시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수긍이 간다. 그렇게 커피 맛을 조금씩 알게 됐고 복학후 한 커피 전문점의 단골이 됐다. 포항의 아라비카. 커피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곳이지만 그당시는 유명한지, 커피가 맛있는지도 모르고 그나마 포항에서 분위기 좋은 곳이어서 자주 갔었다. 그리고 금연이라는 것도 선택의 이유였다.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할 때였다. 이른 아침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한 것 같지 않았다. 중독은 아니었지만 쓰디쓴 커피를 왜 마시는지, 어떤 맛으로 마시는지 조금씩 알아갔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제는 로스팅을하고 여러 방법으로 커피를 만들어 마신다. 커피 공부도 하고 경험도 하고 시험도 보고. 조금씩 조금씩 참 오랜 길을 걸어온듯 하다. 그리고 이젠 그 길을 천천히 오래 가고 싶다. 커피 중독? 카페인 중독? No! 카페인이 내게는 해롭다. 커피 없어도 살 수 있다. 다만 커피가 있어서 더 행복할 뿐이다.
엉켜있는 삶의 타래를 풀어낼 때가 됐다. 컴퓨터처럼 리셋 버튼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럴수 없기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삶의 리셋 버튼을 꾸욱 눌러본다.
글을 쓰고 싶어서 이곳 저곳 일을 벌여놨지만 졍작 꾸준히 글을 쓰지 못했다. 겉모습이 아니라 그 내면이 중요한 것처럼 블로그든 홈페이지든 그 형식보다는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이제껏 '형식'에 엄청 구애를 받았다. 바보같이...
이제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하련다. 내가 해야하는 것들을...
맘같아서는 이전에 썼던 글도 모두 리셋을 하고싶지만 차마 그렇겐 못하겠고 열심히, 조금씩, 꾸준히 써나가야지.
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영어도 다시 시작하고, 책읽기도 다시 시작하고...그리고 글쓰기도.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자!
‘1만 시간의 법칙’이 꽤나 유행을 했었다. 핵심은 이렇다.
“무슨 일이든 1만 시간을 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수치로 계산을 해보면 하루에 2~3시간씩 10년 동안 투자하면 가능한 시간이다. 수치로만 봐도 결코 쉽지 않은 시간임을 알 수 있다. 책은 그 1만 시간을 채우기 위해 7가지를 말한다.
1. 재미있는 일이어야 한다.
2. 단순히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속해야 한다.
3. 꿈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4.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5. 핵심적인 일에 집중해야 한다.
6. 남과 다르게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7.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여타 다른 자기계발서와 그리 다른 점은 없다. 초반에 1만 시간에 대해 말하다가 잠시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구본형의 필사기’가 1만 시간의 실제적인 예시가 될 수 있다. 매일 아침 2시간씩 원하는 일에 투자하라. 매일 투자하는 시간을 늘리면 기간은 더 짧아질 수 있다고 한다.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나 같은 완벽주의자에게는 굳은 결심과 편안한 마음이 필요하다. 한 순간에 습관을 바꾸기도 어렵고 완벽하게 할 수도 없다. 목표를 정해놓고 조금은 느릴지라도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메일은 너무 사무적이어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대답에 저는 깜작 놀랐어요.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휴대폰 문자나 소셜네트워크에 댓글을 다는 걸로 충분하다는 겁니다.”
현재 SNS의 사회적 위치(!)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메일이 종이 편지를 대체하던 그 시대의 혁신이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한 SNS의 열풍이 전세계로 번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SNS로 인해 사회, 문화의 형태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 중심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있다. 이런 변화는 전세계적인 스마트폰의 경쟁에 힘입어 날로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책에서 말하는 바는 간단하다. SNS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왔으며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다. SNS를 잘 활용해야 하는데 있어 조심해야하는 점이 있다. SNS는 확산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자신을 표현하는데 있어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물건을 파는 판촉 활동, 마케팅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이 책은 ‘꾸준히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꽤 오래전부터 이 책을 봤었다. 책 표지가 예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책을 손에 들게 됐다.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이 아니다.
대략 기독교적인 내용이라는 사실만 알고 책을 시작했는데 이건 ‘완전’ 기독교 소설이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교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조심스레 현 교회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편견(크리스챤이나 아니나 할 것 없이)도 여지없이 날려버린다. 그렇다고 비기독교인이 읽기에 거부감을 주지도 않는다. 자연스레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물론 작가는 소설로 이 이야기를 썼다. 하지만 이 책이 소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인 듯 하다. 교회를 다니느냐, 기독교인이냐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다. 읽는 사람이 이 책의 이야기가 실제로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이 책은 소설을 벗어나 삶이 된다.
늦깎이 작가의 첫번째 책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기독교적인 배경으로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큰 성공의 비결은 첫째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와 회복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글이 아름답다. 첫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때로는 참신한 표현이 돋보인다. 비록 번역된 글이라 할지라도 원작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럼 이 책은 내게 소설인가? 아닌가?
믿음의 문재라고 했지만 결국 그 ‘믿음’이라는 것은 말이 아니고 행동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는 것보다는 앞으로의 내 삶 속에서 행동으로 보여야 하는 부분이다. 언젠가 고백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겐 소설이 아니었다고.
중국 촬영에 짧은 느낌들을 적어놓은 사진집.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사진의 중심이다.
사진 속의 배경은 분명 낯선 곳이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지금 내가 존재는 이곳과 같다. 그 안에는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다. 즐거움이 있고 때론 고통이 있다. 그 표정 짓는 얼굴이 모여 각각의 삶을 이룬다. 얼굴은 삶이다.
다른 언어를 쓰고 조금은 다른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 표정만으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를 하얗게 드러낸 웃는 얼굴, 카메라에 조금은 경직된 듯한 어색한 표정,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아름다운 모습, 작가의 눈을 통해 그들의 삶을 본다.
난 글을 읽지도, 사진을 볼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항상 뭔가에 쫓기듯 책을 마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인양 글의 깊이도, 사진의 넓이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진은 그냥 ‘볼 수’ 있지만 보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한 장 한 장을 마음에 담아야 한다. 그것은 부드러운 솜털일 수도 있고 금방 딴 탄산음료 같은 짜릿함일 수도 있다. 천천히 그 느낌을 마음에 품어야 한다. 이 책은 내게 잊었던 여유를 안겨줬다. 옆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손에 쥐려 한다.
밑줄
옆모습은 사람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쓰는 프로필이라는 단어는 원래 ‘옆모습’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더불어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려주는 ‘약력’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옆모습은 사람의 히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의도를 담아 눈, 코, 입으로 표정을 만들어내고 타인과 눈을 맞출 수 있는 앞 얼굴은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마음을 내비추고 싶을 때 사람들은 돌아서듯 옆모습을 슬쩍 흘린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 나라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자 가장 개성 있는 작가' 라고 말하고 싶다.
이외수씨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나보다 더 유행에 민감한, 현대를 살아가는 정보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래 혹은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나 문화 현상을 오히려 그의 책을 알게 되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의 글은 감각적이다. 하지만 가볍게 통통 튀기보다는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묵직함이 있다. 위트와 유머에 감춰진 날카로운 칼날이 있다. 혹자는 그가 쓴 글의 길이와 가벼움을 폄하하지만 난 그의 글이 좋다.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화려하게 내뱉는 글보다 필요한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글이 좋다. 마치 칼로 잘라낸 단면을 보는 듯 한 깔끔함이다.
그의 글은 참 쉬워 보인다. 헌데 말 그대로 그렇게 '보일' 뿐이다. 글을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길이에 상관없이 세세히 설명하는 것보다 함축적으로 짧게 표현하는 것이 더 힘들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쳐 문장이 완성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작가가 사용한 한 단어의 고뇌를 알기에 짧지만 깊은 글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짧아도 더 오랜 시간 숙고하며 읽어야 한다.